History' Bike Academy



2006년 이전

정말이지 단순한 이유였다. 2년 전 모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는 그럴듯한 이유로 대충 넘어갔지만 사실 자전거를 타게 된 계기는 한 푼이라도 교통비를 줄여보자는, 어찌 보면 근검절약을 시행하다 생긴 절박한 이유에서였다. 당시 운영하던 회사가 사업의 방향성을 잃은 채  가라앉고 있던 시기다 보니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을 수 없었다. 비용뿐만 아니라 사업운영에 대한 스트레스로 압박감이 상당했기에 무언가 숨통을 틔어줄 만한 계기 비슷한 것이 필요했던 것 같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후배가 자전거 사업을 하겠다는 계획을 들은 건 훨씬 전 일이지만 나와는 무관한 일이었기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자전거를 장만하기로 결정 할 즈음에 후배를 통해서 자전거를 선물 받게 되는데 그 후배가 지금의 ‘바이키’ 최종남 대표이다. 바이크아카데미는 2006년 ‘바이크루즈’라는 전문 MTB 샵을 모태로 설립되었다. 당시의 자전거 시장의 흐름은 MTB 동호회를 중심으로 한 동호회문화가 창궐하던 시기로 카페를 중심으로 자전거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모임을 결성하고 번개 위주의 라이딩 문화가 시작되던 시기였다. 특히, ‘자전거이용 활성화 정책’들이 지자체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시행되던 즈음이었기 때문에 언론과 방송에서 상당히 비중 있게 관련 기사들을 쏟아지곤 했다.



2007년 이후 

바이크루즈는 초기 3명의 멤버가 의기투합하여 법인형태의 주식회사로 시작하였고 이 후 멤버 교체의 과정을 거쳐 개인 샵 형태를 갖추게 되는데 당시 정비와 서비스를 담당하기로 했던 멤버가 교체되면서 자연스럽게 판매위주의 정책을 선택하게 된다. 그러나 판매량이 많아지고 주변에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정비와 AS문의가 이어졌는데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고객의 기대치를 만족 시키기에는 한계가 많았다. 단순히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는 사실만으로, 아무런 관계없는 바이크 정비 업무가 자연스럽게 나의 몫이 되고 샵이 운영을 위해서는 고객의 신뢰가 최우선 되어야 함을 천명 했기에 어쩔 수 없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인터넷과 정비관련 서적들을 뒤적거리고 나름대로의 매뉴얼을 작성하기도 하면서 정비 분야에 대한 눈을 뜨게 된다. 이 당시에는 제품포장에 동봉된 제조사의 매뉴얼이라고 하는 것이 안장높이를 조절하는 방법에 대한 설명정도가 대부분이었기에 때문에 전문적인 매뉴얼은 제조사 홈페이지나 해외 정보 공유 사이트를 뒤질 수 밖에 없었다. 이 또한 다양한 증상에 대처 할 수 있는 완벽한 정비 매뉴얼은 아니었다. 


해서, 본격적으로 정비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샵 오픈 후 약3개월 동안 무상 정비 이벤트를 하면서 경험을 쌓으려고 노력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가장 활발한 커뮤니티는 바이크셀(바셀)과 와일드바이크(왈바) 이었기에 관련 자료실과 게시판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정비의 특성상 직접 만져보고 해당 증상을 경험해 보지 않으면 영상과 텍스트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지점들에 언제나 항상 다다르게 된다. 같은 바이크라고 해도 조립되어있는 부품의 종류가 다르거나 등급이 다를 경우 또 세팅이 잘못됐을 경우의 증상과 해결책이 달라져야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직접 작업한 결과물을 내가 신뢰 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다. 작업 과정에 대한 스스로의 신뢰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보다 확실한 원리와 가이드, 증상 등에 대한 정보와 확신이 필요했다. 동네 자전거포를 최소 10년에서 20년 넘게 운영하신 분들의 노하우가 필요했다. 그러나 시간도 없고 방법도 쉽지 않아 보였다. 


해외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미국 내 인스티튜트 중에서 BBI와  UBI 두 곳이 가장 유명했으며 이 기관들을 4년의 시차를 두고 모두 다녀올 거라고는 그 당시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2017년 현재로써는 BBI와 UBI를 모두 수료한 사람은 본인이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 BBI(Barnett Bicycle institute)에서는 정비기술을, UBI(United Bicycle Institute)에서는 커스텀 프레임 빌딩 기술을 수학 하였다.



이후, 바이크아카데미의 설립과정은 다이내믹했다. 귀국 후 배운 내용을 정리하고 국내 실정에 맞게 매뉴얼을 작성하면서 본격적으로 한국 내의 BBI를 만들어 보겠다는 목표를 세우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정비경험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정비교육사업이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많았고 실제 그런 사업이 필요 하느냐에 대한 회의적인 시작이 지배적이었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 경험이 중요하긴 하지만 정보의 전달과정과 내용이 압축적이고 체계적인 것이 더욱 중요한 시대다. 무엇을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 그 정보를 꺼내 쓸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했다. 정해진 시간동안, 필요한 기술정보를 습득하는 가장 빠른 길은 교육밖에 없다고 믿었고 실제 BBI에서 배우면서 느낀 부분도 나의 신념을 보다 강화시켜 주었다. 중요한 것은 배운 것을 내 것 으로 만드는 복습과정 이다. 이 과정이 자연스럽게 경험이 쌓이게 되는 것이다. 


첫 번째 교육은 예상보다 빨리 시작되었다. 당시 대기업에 근무하다 퇴직한 함께 새로운 인생2막을 준비하려는 대학선배의 연락을 받고 자전거 사업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첫 번째 교육생이 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미처 준비가 되기도 전에 1기 교육이 시작되었고 2017년 12월 기준126기(총735명)의 교육생이 배출되었다. 전국적으로 약 130여개의 샵이 동문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며 수료생들은 수입업체, 제조업체, 유통업체 등 자전거 산업 전 분야에 걸쳐 활동하고 있다.



2009년

서울시 최초로 자전거정비학원 평생교육과정을 인가받고 보다 심화되고 다양한 제품에 대한 정비기술을 확보하고 관련 내용을 매체를 통해 기고하면서 바이크아카데미가 시장에서 인정받기 시작하였다. 다양한 분야의 경험을 가진 교육생들이 모이게 되면서 패밀리 샵 형태의 공동구매 방식 사업도 주도하고 소규모 업체가 시장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는 시기가 2009년에서 2010년 사이였다.



2010년

서울시에서 추진한 자전거 정비기능사 양성사업의 교육주체로 선정된 후 내부 교육 커리큘럼의 질적 심화과정을 통해보다 질 높은 교육서비스를 제공하기위해 노력하였다. 이후 서울시에 주관하는 자전거 패트롤, 자전거 대행진, 자전거 시민강사 양성교육 등의 강사로써 강의를 맡게 되어 협회 또는 단체단위의 교육을 진행하였다. 교육생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이들의 권익과 지위향상을 위한 요구가 자연스럽게 대두되어 같은 해에 행정안전부 산하 사단법안 한국자전거미캐닉협회를 설립하고 자격시험 사업 등 관련 사업을 시작하고 자전거 종합관리 시스템 사업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하여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기도 하였다. 바이크아카데미 설립이후 지금까지 자전거 정비기술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질문하고 스스로 답하며 많은 교육생들과 성장해 왔다. 자전거 생활화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정비기술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 높아지고 있는 현실인식 속에서 자전거 본질에 해당하는 프레임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2012년

프레임 빌딩이라는 미개척 분야에 도전이 시작되었다. 개강 후 약 40여 명의 프레임 빌더가 탄생하였고 국내에서 몇 안되는 빌더의 족적을 남기고자 많은 이들이 연습과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루키바이크'의 이정훈 빌더와는 매체의 인터뷰이와 인터뷰어로 만난 특이한 관계가 있다.  이 후의 역사가 어떻게 기록될지는 모르지만 바이크아카데미의 도전의 과정은 한국 자전거 시장의 도전의 과정과 괘를 같이하고 있다고 믿는다.


2013년

'12년 중반 부터 시작된 미군부대 프로젝트는 우연한 기회에 용산 미8군에서 Bike service를 진행하면서 시각되었다. 당시 주한미군들의 교통수단은 셔틀버스 아니면 차량이 전부였다. 때마침 한강 자전거 도로가 정비되고 신규 자전거 입문자들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서울의 중심부에 있는 용산에 근무하는 미군들 사이에서도 자전거가 인기 아이템이 되고 있는 터였다. 그러나 부대내에서의 정비 서비스가 전무한 상태에서 라이더가 늘어나면서 정비관리에 대한 수요가 발생하기 시작하였고 마침 미군관련 업체에서 근무하던 후배가 연락을 해오면서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잠재적인 고급 완성차 수요가 있는 것으로 판단 되었고 약 6개월 후 정식으로 사업 제안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당시 반포에 위치한 '바이클x' 에 먼저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초기투자비용, 영어구사가 가능한 인력, 경험있는 미캐닉의 확보 등 미군부대의 특성으로 인한 다양한 장애요소가  결정에 영향을 미치었다. 큰 조직의 회사차원에서는 접근하기 어려운 비즈니스였으리라 짐작되었고 이를 극복 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였다. 때마침 프로미캐닉 과정과 프레임 빌딩 교육을 이수한 Mike(곽병훈)가 파트너로 참여하게 되었다. 작은조직으로 도전해 볼 만 한 프로젝트였기에 몇 개월의 준비기간을 거쳐 proposal 하여 계약을 완료하고 2013년 부터 본격적인 사업을 전개하였다. 


한국인이 아닌 미국인을 고객으로 상대해야하는 비즈니스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 였다. 미국의 바이크 소매상들의 판매전략과 서비스 시스템에 대해 공부하고 어떻게 적용시킬지 고민하면서 준비과정을 거쳤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대부분의 고객이 1~2년 사이에 한국을 떠난다는 것이다. 이때문에 이동시 박스(boxing)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것이고 우리에게는 매년 신규고객이 확보된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에 근무하는 동안 많은 라이더가 한강 라이딩을 즐기고 국토종주를 도전하는 고객들과 상대적으로 가격흥정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되는 시장여건에 메리트가 많기도 했지만 정비 서비스에 있어서 '공짜는 없다'라는 개념을 가진 고객을 상대하는 영업환경은 한국시장에서는 느낄수 없는 경험이다.


2014-2017

전 세계적인 불황의 그늘을 한국이라고 피해갈 수 는 없었다.

자전거 시장은 신규 입문고객이 줄고 경기불황으로 소비자의 지갑이 얇아지자 스포츠 레저 분야에서부터 매출하락이 본격적으로 가시화 되기 시작했다. 패션분야처럼 스포츠 분야또한 일종의 유행의 성격을 갖고 있기에 경기 사이클에 따른 시장의 부침은 어느정도 예상되기도 하였고 절대인구의 한계로 인해 자전거 시장으로 유입되는 소비자층이 얇아지는 현상은 어쩔수 없는 현상이었다.


이제 자전거 사업은 소비재가 아닌 문화재로 그 위치를 자리매김 해야한다. 교통수단으로 사용 할 수도 있으며 주말에 라이딩을 즐기는 라이더로 자연스럽게 전환 할 수 있도록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공공자전거가 확대되면서 시내 곳곳에서 자유롭게 저렴한 가격으로 이동수단을 확보하게 되면서 보다 자전거 문화를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고 있다. 


앞으로의 변화가 기대된다.